냉장고를 부탁해

제한 시간은 10 , 심사위원은 모두 세 명. 그렇다면 굳이 3인분 이상의 요리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세 명이 먹을 만큼의 분량만, 전력을 다할 수 있는 분량만 만들어내면 충분한 것이다. 적은 양을 만든다고 해서 시간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 요리는 도전할 필요조차 없다.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한 식빵을 골라내며 세영은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제대로 된 요리사를 뽑으려고 대회를 개최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 일시적인 화제성이면 충분하리라.

 

. 충분한 건 너희뿐만이 아니야. 아닌 게 아니라 요리라는 틀 바깥에서도 한 치의 오차를 내보이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전장에 임하는 그녀의 싸움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가 최고의 요리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이제 전국의 누구도 한울고등학교 전력요리연구부(서관)의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달궈진 팬 위를 사각진 버터가 훑고 지나갔다. 노란 유분이 팬 위에서 끓으며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세영은 그 시점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식빵을 올렸다. 버터를 흡수해서 완벽하게 한 면이 구워질 때까지 앞으로 15.

 

후후후……과연 이세영이야. 역시 한울고등학교 전력요리연구부(서관)의 부장다워. 요리도 반쪼가리구나?”

!”

 

그녀의 상대방인 이 여자만 아니었더라면.

 

한울고등학교 전력요리연구부(동관)의 부장, 유아영. 한때 한울고등학교 전력요리연구부의 동기이자 동지였던 존재.

 

옛날 일이었다. 그녀와 자신은 요리라는 필드에 있어서 지향하는 곳이 완전히 달랐다. 도저히 서로를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결과 전력요리연구부는 서로의 지지자들이 갈라져 싸움을 반복하게 되었고, 교무진의 회의에 의해 결국 부가 반쪽으로 나눠지게 된 것이다. 가지고 있던 유구한 역사가 쓸모없게 된 선배들은 땅을 치며 통곡을 했지만 이미 실력으로 두 명을 꺾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후후……역시 저열한 이과놈들에게는 문화를 이해하는 감성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네…….”

너를 이해하는 것만큼 문화에서 멀어지는 일이 있을까? 길을 못 찾고 계속 헤매는 꼴을 보면 역시 덜떨어진 문과놈들은 안된다니까. 네비게이션이라도 달아줄까?”

네 가치는 고작 네비게이션이구나. 스스로에게 하는 비유치고는 겸손한 면이 있어. 다만 턱없이 조야하긴 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어쩌면 좋니? 너는 문제조차 될 수가 없는데. 문제는 답을 낼 수 있는 안건을 가리키는 말이거든!”

두 선수 모두 요리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사위원의 곤혹스러운 듯한 제지가 들어왔다.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할 수 없었던 듯, 둘 다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요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요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 맛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일시적인 화제성. 때문에 맛에 큰 차이가 없을 경우 보다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쪽에 점수를 더 주는 경향이 있었다. 같은 학교, 쪼개진 부를 나눠 담당하고 있는 운명의 라이벌. 지금 현재 결승에 오른 두 사람의 외부적 요소는 완전히 동일한 상태. 따라서 보다 집중해야 될 것은 결승전 내부에서 이뤄지는 스토리텔링이다.

 

방송시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그들은 반전 요소를 설계한다. 이런 짧은 시간 안에 노려볼 수 있는 반전이야 뻔한 법이다. 맛있었는데 나중에 먹은 요리가 더욱 맛있다. 맛없어 보이는 음식이 실제로는 맛있다.

 

이 두 가지 반전을 동시에 노릴 수 있다면 바로 우승한 것이나 다름없다. 바꿔 말하자면 우승하기 위해서는 둘을 동시에 노려야만 했다. 그러기 위한 답은 실로 간단. 못생긴 요리를 만들어, 심사위원들이 거부감에 차례를 뒤로 미루게 만드는 자야말로 우승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요리대회 결승의 암중에 자리한 진정한 사투였던 것이다. 맛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때에 따라서는 못생긴 것조차 죄가 아니다.

 

그리고 한울고등학교 요리계를 제패한 패왕이 되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에 선 두 사람이 취하는 행동이 똑같은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말로는 절대 그러지 않았지만, 둘은 이미 서로의 실력이 호각이라는 것을 완전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전력요리연구부가 반으로 쪼개질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완성되어 가는 샌드위치를 바라보며 세영은 비장의 조커를 꺼냈다. 바로 꽁치 통조림이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오프너로 뚜껑을 딴 후, 안에 담겨 있는 국물을 샌드위치 위에 들이부었다.

 

생선물! 생선물을 빵 위에 붓고 있어!”

말도 안 돼! 저런 짓을 했다간 비린내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야!”

 

관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세영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떠올렸다. 자신이 요리하는 것은 사전정보가 결정하는 선입관! 캔에 담겨 있다고 해서 그것이 생선물일 거라고 생각하고 마는 사람들의 사고였다. 사실 이미 이 캔에 담긴 것은 생선물이 아니라 극히 평범한 생수였던 것이다. 재료에 손을 대는 것으로 맛과 향을 손상시키지 않고 음식에 가는 손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필살의 미스디렉션! 이것이야말로 허점과 맹점을 찌르는, 통조림 제조업과 심리학의 위대한 결합이었다. 실로 사이언티픽.

 

이것으로 승리는 내 차……?”

후후. 겨우 그 정도니? 나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어. 감성이 충족되지 않은 너희의 행동 패턴 따위, 요새 수능의 난이도보다 뻔하구나.”

 

세영은 아영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서랍 속에서 비닐을 꺼내들며 외쳤다.

 

시각에 시각을 더한다! 존재하지 않는 후각이여, 압도적인 시각적 미에 패배해 나의 공감각이 되어라!”

 

데코레이션을 위해 꺼낸 비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세영만이 그 비닐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바로 관악구에서 판매하는 음식물쓰레기 종량제 봉투였다! 아영은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샌드위치 아래에 깐 후, 샌드위치에 끓이던 양송이 스프를 들이부었다. 그 비주얼은 마치 취객이 생산해낸 무언가를 연상시켰다.

 

마침내 제한시간이 끝났다. 두 사람은 완성된 요리를 심사위원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세 명의 심사위원은 긴장된 기색으로 경이로운 요리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심사위원이 떨리는 손으로 아영의 샌드위치에 손을 댔다. 세 번째 심사위원은 눈을 감고서 세영의 샌드위치에 손을 뻗었다. 이제 모두가 가운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심사위원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건……둘 다 너무 눅눅해서 샌드위치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먹을 만한 게 아니군요.”

 

심사위원은 슬쩍 PD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예, , 출세……그런 것들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던 곳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지 못한 자는 누구나 들었을 것이다. 배석해 있는 심사위원도, 대회를 진행하던 진행자도, 그걸 찍던 카메라맨도. PD는 그 목소리가 대단히 낯익다고 생각했다. 성문도 성조도 가름하지 못하는 것,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게 되는 것. 바로 양심의 소리였다. 못생긴 건 죄가 아니지만, 너무한 건 죄가 될 수 있다.

 

마침내 요리대회는 결승진출자 전원 탈락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함께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대회의 엔딩이지 이야기의 엔딩은 아니었다. 두 요리연구부의 사력을 다한 전투 끝에, 대한민국 요리계를 경악케 한 못생긴 요리의 인재들을 줄줄이 배출한 한울고등학교의 전설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감성적인 음식을 완성했어. 원숭이의 좌뇌 요리야.”

. 내 쪽은 가장 논리적이라고. 원숭이의 우뇌 요리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소설회랑 - 라이트노벨 한 시간 쓰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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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
단편/라한대 2015. 7. 3.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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