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공주 커뮤니케이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바다는 푸르지 않았다. 물이란 것은 원래 그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태양이 내리쬐는 빛을 한껏 빨아들인다. 그리고 이 바다의 빛깔은 언제나 새까만 색에 가까웠다.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를 단숨에 지워내는 깊은 물.

 

태양빛이 지닌 강렬한 열에너지를 그대로 끌어안은 바다가 요동쳤다. 언제나 이 시기에 봐 왔던 현상이었지만 단 한 번도 식상한 적은 없었다. 바다가 낳은 이 아이야말로 그녀의 소원을 들어줄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바다뿐. 빛의 속도가 절대적이라 한다면 이곳이야말로 바다의 중앙이라 부르기에 합당한 곳일 터였다. 포말조차 튀지 않는 한없이 흑색에 가까운 남색의 평원 위에서 소녀는 서 있었다.

 

인류가 지금과는 사용하는 금속이 달랐을 시절 소녀는 이곳에 빠졌다. 사고였을까?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바다 한복판에 표류했다는 사실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귀납적인 결론에 이르질 않았던 것이다. 소녀는 분명 살아 있었다.

 

소녀가 팔을 들어올렸다. 새하얀 원피스, 파란 띠가 감긴 나들이용 밀짚모자가 감싸고 있는 조그만 몸이 태양빛을 받아 빛났다. 빛을 죄다 흡수하는 바다와, 그 위에서 홀로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소녀.

 

소녀가 손을 입에 모으고선 크게 외쳤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의사는 분명 다 전달된 모양이었다. 그 외침과 함께, 바다가 내뿜은 열을 계속 빨아들이던 바람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으니까.

 

소녀가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을 내밀어 북동의 한 방향을 가리켰다. 바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히 이 바다를 떠도는 소녀의 명에 복종하는 한없이 거대한() 바람().

 

올해도 변함없이, 바람은 소녀의 의지를 담은 채 북상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기억이 있었다.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소년은 기억력이 좋았다. 건망증 증세를 보인 적 단 한 번도 없고, 학교에 준비물을 까먹은 적도 없었다. 암기과목은 그 자리에서 줄줄 외워 내릴 정도였다. 그러니 잊어버렸다는 말을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불어 닥치는 태풍 속에서, 소년은 거실 마루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위성 TV는 수신 신호가 미약하다며 지직거리는 화면만을 내보낼 뿐이고, 컴퓨터를 켜서 게임이라도 하면 좋으려면 그 컴퓨터를 조립하는데 혼신의 통장을 기울인 형은 정전의 위험이 있을 때 컴퓨터를 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태풍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태풍을 보고 있노라면 소년은 언제나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어야 할 무언가. 자신이 잃어버린 그것을 찾아내라고 꾸짖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천둥처럼 호통을 치고, 때로는 폭우처럼 눈물을 흘리고. 하지만 아무리 그 느낌의 원인을 더듬으려 해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이번 태풍은 유난히 그 느낌이 강했다. 역대에서도 손꼽힐 만큼 강력하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실제로 여태껏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주상복합 아파트의 철제 프레임 창문이 거칠게 흔들리며 덜걱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튼튼한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위기의식이 희박한 가족들은 이번에야말로 창문 한 번 깨지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곤 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무언가 새하얀 물체가 창문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소년이 그 물체가 뭔지 생각해낼 시간도 주지 않고, 그 물체는 집의 창문을 그대로 직격했다. 와장창! 유리가 박살나는 특유의 소리와 함께 태풍이 거실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깨져버린 창문의 작은 구멍 외에 거실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었다.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한 바람은 이내 방 안에서 잦아들며 소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바람에 날려 온 빗방울이 볼을 따라 조용히 흘러내렸다.

 

?”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빗방울이 번진 자신의 뺨을 문질렀다. 매년 여름마다 소년을 자극하던 느낌이 한 순간 섬광처럼 터져 나온 것이다.

 

배 위에서 떨어진 소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던 소녀. 언제일지도 모를, 이미 퇴색하리만큼 퇴색해버린 기억이 머리를 울렸다.

 

소년은 허둥대며 깨진 창문가를 향해 나아갔다. 생애 최초로 중력을 이기는 데 성공한 쌀집 간판이 묘하게 자랑스런 곡선을 그리며 창문에 처박혀 있었다. 깨진 유리에 손이 베이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소년은 간판을 치우고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제 알았니?]

 

바람이 뺨을 두드렸다.

 

[나 기다리고 있어.]

 

빗방울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아직도 너무 멀리 있네.]

 

그랬다.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서로를 잃어버린 이후, 둘의 거리를 한 번도 가까웠던 적이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소년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소녀. 두 점을 잇는 1600km의 간극을 돌파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뿐이었다.

 

[다음에는 꼭 대답해 줘. 그때처럼. 알았지?]

 

환청이 들려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환청일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빗방울과 함께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년은 크게 외쳤다.

 

 

 

 

닿지 않는 목소리가 있다.

 

음속이란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숫자인가. 인류가 오랫동안 넘으려 한 그 속도는 무엇 하나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한다. 소녀의 외침도, 소년의 대답도 서로에겐 닿지 않는다. 영원토록. 바다 위 1600km 란 건 그런 거리인 것이다.

 

하지만 1년에 한 때, 태양의 에너지를 받은 바다가 만들어낸 단 하나의 통신 수단이 있었다.

 

사방으로 깊은 물밖에 보이지 않는 바다의 한 가운데서 생겨나는 저기압. 소녀의 애타는 심정을 담고 있는 편지. 부디 이 바람이 그 애가 있는 곳까지 닿기를. 올해도 변함없이 그 바람은 대해를 가로질러 대지를 향해 간다.

 

1년에 딱 한 번 둘을 이어줄 수 있는 수단. 여름에밖에 생성되지 않는 거대한 바람.

 

사람들은 그 강렬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리켜, 태풍이라 불렀다.

 

 

20120902

경소설회랑- 라이트노벨 한시간 쓰기 대회

http://lightnovel.kr/freewrite/409324

대마
단편/라한대 2012. 9. 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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