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북 커버

고대의 마녀 비술

소원 성취 편

 

How to use

 

규칙 1. 마녀의 비약을 손에 쥔 채 24시간 동안 같은 문장을 반복한다. 이를 주문이라 한다.

 

규칙 2. 속도는 자유롭게. 단 순환하는 문장이 10초에 1개 이상의 페이스를 유지해야만 주문으로서 효력을 발휘한다.

 

규칙 3. 24시간 후, 24시간 동안 문장 내용과 반대되는 내용이 소원으로 이루어진다.

 

규칙 4. 주문을 외우는 도중 반대되는 내용을 듣게 되면 주문이 취소된다.

 

 

학원 최강의 초능력자, 김길태(16, 바보)는 힘겹게 얻어낸 마녀의 비약을 손에 쥐고 숨을 가다듬었다. 앞으로 24시간이다. 이미 소원을 빌 말은 정해 놓았다. 앞에는 그 애가 만들어 준 10초에 1번을 카운트 해 주는 특제 위치_스톱_워치(비매품)가 놓여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이런 비정상적인 비술에 의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초능력 코스는 저학년 때는 오로지 이론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최강의 초능력 레벨 보유자인 길태는 자신만만하게 학원에 수석입학한 후, 뇌과학을 배우며 2년 내내 바닥을 기었다. 그리고 지금 2학년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론 시험……. 하지만 이번 시험만 어떻게든 넘기면 난 3학년이 된다! 그럼 이론과는 거진 바이바이! 내 최강의 초능력을 발휘해 주지!”

 

그에게 주문과 비약을 준비해 준 마녀, 같은 학교의 1학년생이기도 한 이유진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번 주의사항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선배, 알아 들은 거 맞죠? 주변에서 머리가 좋다, 천재다, 이런 발언을 들으면 주문은 그대로 끝이에요. 무조건, 무조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셔야 해요.”

고맙다, 유진아……! 이번 시험을 무사히 통과해 유급을 벗어나면, 이 은혜 꼭 갚을게!”

하아……. 부디 성공하세요. 저도 선배가 유급하는 꼴은 별로 보고 싶지 않으니까.”

 

길태는 어두운 표정의 유진이에게 한번 웃어준 뒤, 비약을 오른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고심해 둔 주문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보다!”

 

좋다. 이걸로 24시간 후 나는 천재가 된다. 시험 따위 가뿐히 통과해주지. 한껏 들뜬 채 큭큭거리며 웃던 길태는 곧바로 비행능력을 발휘해 창밖으로 뛰쳐나갔다. 창문엔 당연히 유리창이 달려 있었지만 길태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하하! 창문 따위가 나를 막을 순 없다! 나는 바보다!”

 

유리창을 박살내며 운동장 저편으로 날아가는 길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진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진짜……바보야.”

 

 

 

 

 

24시간 동안 같은 문장을 말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어떤 2인조 남학생이 길태의 밑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자신도 좋아하던 게임 얘기가 나와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그 남자애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 진짜 어제 그 경기 끝내주지 않았냐? 13번 선수의 플레이는 정말 천……크허헉!”

 

길태는 사이코키네시스를 발휘해 2인조 남학생을 기절시킨 후 식은땀을 흘렸다.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주문을 깨뜨릴 뻔한 것이다. 이제야 유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급적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라는 말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는 바보였으니까.

 

학교 뒷산, 어디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가서 숨어 있다면 될 것이다. 추위는 파이로키네시스로 막고, 먹을 건 텔레포트로 가져오고, 머물 곳은 염력을 파내면 된다. 자신의 XX(주문 상의 이유로 모자이크 처리)적인 두뇌에 깊이 만족한 길태는 다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하늘이 그를 시기하고 있었다.

 

“2학년생 김길태 발견! 나는 똑……크윽!”

 

똑똑하다는 말을 외치려 했던 한 선도위원을 쓰러뜨린 길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목에 걸려있는 위치_스톱_워치가 경고를 울렸다.

 

[3초 남았습니다.]

나는 바보다!”

 

길태는 침을 삼키며 다시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3학년 학생 두 명을 기절시킨 책임을 물어 선도 위원들이 그를 찾으러 온 것 까지는 그나마 이해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선도위원들은 그의 약점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던 것이다. 길태를 발견하자마자 DHA스럽고 오메가3틱한 두뇌에 매우 긍정적인 발언들을 외쳐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길태는 평범한 바보가 아니었다. 실습인 초능력 운용에 있어선 대한민국은커녕 세계 전체를 뒤져봐도 천재적인 센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여태껏 한 번의 발언도 허용하지 않은 채 조우한 모든 선도위원들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힘도 무한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전신에 감돌고 있던 프라나 수치는 어느새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선도 위원들은 굉장히 조직적으로 그를 포위한 채 힘을 야금야금 깎아먹고 있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렇게 가다간 24시간을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챈 길태는 이를 갈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선도부장 홍준호! 다음에 만나면 관절이 자유 기동하는 피규어로 만들어 주마!”

[2초 남았습니다.]

나는 바보다!”

 

주문을 갱신한 길태는 당당하게 너른 공터로 나아갔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를 유인해 프라나가 제로가 되기 전 단번에 제압한다. 그 후 남은 시간을 버티고 시험을 치른다!

 

크큭……너희가 나의 생명을 원한다면 주마.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영혼을 삼키리라! 크하하핫!”

[3초 남았습니다.]

나는 바보다!”

 

그리고 국립초능력양성고등학교 역사에 길이 남을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잠깐만!”

[3초 남았습니다.]

나는 바보다!”

 

시험이 시작하기 바로 전, 길태는 의기양양하게 마지막 주문을 외우며 교실에 난입했다. 위치_스톱_워치를 쳐다보니 디스플레이 창에 주문의 성립을 알리는 하트 모양 마크가 떠올라 있었다.

 

해냈다! 나는 이제 천재야!”

길태 군, 유급하기 싫으면 빨리 자리에 앉으세요.”

 

냉담한 선생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길태는 당당하게 자리에 앉았다. 주위 애들한테 필기구를 빌리고, OMR 카드에 당당하게 번호와 이름을 마킹한 후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

 

하나도 모르겠다.

 

뇌가 종이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뇌는 응답이 없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전개에 35명의 선도위원들과 배틀 로얄을 벌였을 때도 흘리지 않았던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이럴 리가 없어! 나는 천재가 되었을 텐데!”

길태 군. 한번만 더 떠들면 0점 처리하고 퇴장이에요.”

 

퇴장당해도 다를 게 없는데요! 길태는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영혼의 외침을 꾹꾹 눌러 삼키며, 지우개에 5개의 번호를 쓴 후 열심히 지우개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아, 선배. 생각해 보세요. 머리가 좋아진 다음에 조금이라도 공부를 했어야 시험을 잘 치죠.”

?”

 

생각해보니 그랬다. 머리가 좋아진 다음에 공부를 안 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선도 위원들과의 전투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그런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유진은 안쓰럽다는 듯 물수건을 손에 들어 길태의 얼굴을 정성껏 닦아주면서 말을 이었다.

 

차라리 제가 옆에서 보면서 조치를 했어야 됐는데……죄송해요, 선배.”

, 아냐. 유진이 잘못은 아니지. 다만 내가 너무 바보였을 뿐.”

하아. 정말 죄송해요. 그래도 유급하면 같은 학년이 될 테니까, 제가 내년부터는 진짜 잘 조치해 드릴게요.”

진짜? 하하. 이거 참 걱정이 없이 든든하군!”

 

유진은 길태의 얼굴에 묻은 땀을 다 닦아낸 후, 옷도 정성껏 빨아 단번에 말린 후(고대 마녀의 비술~빨래 건조 편) 옷매무새까지 정돈해 주고 길태를 배웅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길태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유진의 사역마인 고양이가 입을 열었다.

 

그런 말을 믿다니, 저런 바보는 300년을 살면서 처음 보오, 선생.”

! 선배는 세계 최강의 능력자란 말이에요. 들으면 어쩌려고!”

, 이제 와서 별 상관이 있나 싶소만. 선생은 이미 그와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 다니겠다는 소원을 성취하지 않았소?”

 

유진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양이의 입을 막으며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리고 선조로부터 내려온 고대의 마녀 비술~소원 성취 편을 꺼냈다. 포스트잇을 붙여둔 페이지로 펼치자, 거기엔 선배에게 말해줬던 4개의 규칙이 쓰여 있었다. 유진은 천천히 거기서 한 장을 더 넘겼다.

 

규칙 5. 이하 4개의 규칙을, 소원 대상자인 상대방에게 말해줄 것.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의 승리!

 

선배가 바보라서 정말 다행이야.”

 

유진은 한숨을 쉬며 어나더 북 커버인 소원 성취 커버를 벗기고, 책을 다시 책장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그 옆면엔 동글동글한 글씨로 책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고대의 마녀 비술~연애 성취 편.

 

 

 

경소설회랑 - 라이트노벨 한시간 쓰기 대회

http://lightnovel.kr/one/414835

대마
단편/라한대 2012. 10. 28. 21:13
,
Powerd by Tistory, designed by criuce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