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규칙

코로 불을 뿜는 재주는 없지만, 그는 악마였다.

 

재주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악마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이런저런 은유들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살랑대는 뾰족한 꼬리도 없고, 나선형으로 힘차게 비틀어진 뿔도 없다. 피부도 새빨갛지 않고, 파리라거나 염소라거나 하는 동물하고도 별 관련이 없다. 지구상에서 딱 하나 그와 꼭 닮은 동물이 있긴 했다. 인간이라고.

 

물론 많은 부품이 인간과 호환되지만 몇 가지 다른 부분도 있다. 그리고 그 다른 부분으로 인해 명확한 종족적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뇌와 심장, 혈관에 위치한 이 미묘한 차이는 그들에게 물리를 초월한 각종 능력을 부여하였으며 이는 악마라는 호칭의 원인이 되었다. 악마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간정신력원리주의자 비스무리한 사람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초능력이란 호칭을 주장하곤 했다.

 

그 능력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나, 강대한 개체의 경우에는 전략적인 무게를 지닌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옆집에 사는 이웃 사람이 아내와 대판 싸우고 나오면서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오늘은 지구를 폭파해야겠어.” 라고 생각한다 해서 크게 문제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옆옆집에 사는 악마가 온라인 게임을 하다 PK를 당해서 오늘은 지구를 폭파해야겠어.” 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좀 큰 문제였다. 가끔 가다 진짜로 그럴 수 있는 놈들이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결코 맹수와 한 방에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힘의 격차가 명확한 상태에서 과연 제대로 된 관계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인가? 설령 그렇게 보이는 관계가 일시적으로 생성됐다 한들, 한 쪽의 아량에 모든 걸 기대는 관계가 정상적일 리 없다.

 

이 관계를 극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인류는 이미 비슷한 시스템을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스템을 혹자는 동물원이라고 불렀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악마가 살기에 그리 좋은 나라가 아니다. 물론 초능력자를 두고 악마라고 불렀다간 8년 전에 제정된 초능력자인권보호법에 의해 오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원래 무단횡단을 하다 걸려서 벌금을 내고 나면 법을 어긴 대가를 치렀다기보다는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법. 초능력자인권보호법은 딱 그 정도 위치였다.

 

게다가 저건 지엽적인 부분일 뿐, 초능력자인권보호법은 원래 모든 초능력자를 등록하고 관리함으로써 최대한 초능력 사고를 방지하려는 데 의의가 있었다. 굳이 풀이하자면 초능력자에게서 초능력자가 아닌 인간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부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리고 초능력자가 각성 후 3개월 이내에 등록하지 않았을 때 받는 처벌은 벌금 오만원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그런 미등록 초능력자들을 찾아다니는 직업이 존재했다. 압도적인 능력의 밀도 차이를 가뿐히 무시한 채, 도구와 경험을 짜내 추적하고 마침내 악마를 체포하는 자들. 일반인들이 이 특수직종에 종사하는 자들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했지만 거기에 깔려 있는 느낌은 다들 엇비슷했다.

 

말하자면 우린 그런 또라이들이라는 거지.”

저번에 그 책 재밌게 읽으셨나 봐요. 또라이라는 말을 요새 입에 달고 사시네.”

괜찮은 어감 아니냐?”

글쎄요? 전 그냥 병신이 더 좋은데요.”

그건 특정 계층을 비하한다고 욕먹을 가능성이 있으니 곤란해.”

 

소규모 또라이 수장, 간판용 언어로 번역하면 세계초능력자탐색조력협회 산하 희망탐정사무소 소장인 남자는 칼같이 말을 잘랐다. 조수는 싸구려 나일론 소파 위에 누운 채 코웃음을 쳤다.

 

, 얼마나 신경 쓴다고 이제 와서?”

, 주여. 이 우매한 조수 황천으로 택배 보내소서.”

주는 무슨 얼어 죽을, 주문진에 주상복합 짓는 소리하고 있네. 믿지도 않으면서.”

내 직업상 결격사유를 드러내지 마라. 일급비밀이니까.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다 소장님과 저의 신뢰를 나타내는 거 아닙니까. 그럼 이제 탕수육 시켜도 돼요?”

컵라면이나 처먹어.”

일주일째 그거만 먹고 있는데요.”

요새 사무소 주머니 삐그덕대는 거 안 보이냐? 빨리 이 새끼 찾지 못하면 다음 달은 나앉게 생겼어.”

 

소장이 짜증어린 목소리로 서류를 조수에게 내던졌다. 이미 몇 달이 넘도록 그들을 엿 먹이고 있는 어떤 악마에 대한 서류였다. 그 안에 내용은 이미 달달 외우고 있던 터라, 조수는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굴려 서류 뭉치를 피했다. 빗나간 서류 뭉치는 뒤에 장식용으로 올려놓은 꽃병에 부딪혀 꽃병과 함께 먼지가 가득한 리놀륨 바닥에 떨어졌다.

 

! 피하면 어떡해!”

아니 이 인간 페트병 소장새끼가 뭐라는 거야? 그럼 제가 저걸 맞아야 됩니까?”

너보단 꽃병이 더 중요해! 근데, 인간 페트병이 뭔 뜻이냐?”

재활용 여지는 있는 쓰레기라고요.”

 

조수는 소장의 얼굴에 장착된 분노 측정기를 보고 이제 슬슬 말장난을 그만두고 공손해져야 할 때임을 알았다. 최대 위험인 새빨간 색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수는 냉큼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꽃병을 집어 들어 다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다행히 꽃은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얼굴을 붉힌 채 한참을 씩씩대던 소장은 파리마냥 손을 비비고 있는 조수를 보며 호통을 쳤다.

 

, 외근 나갈 준비해! 오늘도 발로 뛴다!”

……제발……좀만 봐주시면 안돼요? 이건 못 잡아요. 능력이 너무 특이하다고요. 우리 지금이라도 위약금 물고 이거 빠꾸시키죠. ?”

위약금 니가 댈 거냐?”

에이, 그건 좀 아니죠.”

그럼 입 싸물고 나가.”

 

아무래도 아까 너무 놀려먹은 모양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라면 소장은 조수의 조언을 몇 번이고 생각할 줄 아는 좋은 상관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기분이 좋을 때가 별로 없었다. 바로 지금처럼. 더 이상 개겨봐야 좋은 꼴을 못 볼 거라 생각한 조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문 옆에 있는 종이봉투를 집어 들었다.

 

빨리 나가!”

나갑니다, 나가요!”

 

오늘은 또 얼마나 걸리려나. 종이봉투에 가득 담긴 전단지를 바라보며 조수는 한껏 우울해졌다.

 

 

 

 

 

조수는 활짝 웃는 얼굴로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악마의 얼굴이 그려진 것도 아니고, 사무소를 홍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전단지 알바를 뛰고 있는 것이다. 조수가 있는 사무소는 인원도 달랑 두 명뿐이고, 가뭄에 세계수 날 때나 가끔 들어오는 의뢰를 빼면 하는 일도 없었다.

 

이 알바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짓일 뿐이다. 의뢰는 겸사겸사. 소장이야 의뢰 해결을 위한 일석이조의 아-웃쏘싱이라고 했지만 소장이 그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를 확률은 1에 무한히 수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어서 조수는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을 눈치껏 살피며 일을 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들어온, 희망탐정사무소가 현재 맡고 있는 의뢰는 간단했다. 악마 하나를 찾아달라는 거였다. 악마라는 놈들이 대게 그랬다. 남들과 다른 능력이 있으면 쓰지 않고 배기질 못하는 것이다. 코로 불을 뿜어서 집을 세 채나 태워먹은 놈처럼. 능력을 알고 있다면 거기서부터 역산해 추적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놈들은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찾기 어려운 놈은 두 종류뿐이다. 첫째, 능력을 쓰지 않는 놈들. 이런 놈들은 존재하나 마나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놈들이었다. 둘째, 능력 자체가 티가 잘 안 나는 놈들. 그리고 지금 희망탐정사무소에 들어온 의뢰가 딱 이 짝이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꼭 와주세요!”

 

그냥 스쳐지나가려 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전단지를 내밀면서, 힐끔힐끔 얼굴을 계속 살폈다.

 

놈의 능력은 마인드 컨트롤.

 

말을 걸어서 상대방의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추정.

눈으로도 가능……할 거라고 추정.

 

그걸로 끝이었다.

 

솔직히 이런 자료를 던져놓고 뭘 찾으라는 것인지. 조수는 세계초능력자탐색조력협회에 대한 욕을 속으로 무진장 퍼부었다. 잠시간 정신무장을 마친 조수는 전단지를 보급하기 위해 공중전화부스 옆에 놔둔 종이봉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저 봉투를 다 비워야 당분간 밥 먹을 돈이 생긴다.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생계수단 근처엔 이상한 학생이 하나 멀뚱히 서 있었다. 저 봉투 안에 돈 같은 건 들어있지 않으니 물건을 훔치려는 의도는 아닐 터였다. 조수는 생각할 시간을 늘리기 위해 살짝 걷는 속도를 줄였다.

 

일단 보자면 나이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나 되었을까. 머리는 반삭발로 짧게 깎고, 등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언가 가득 차 있는 백팩을 둘러메고 있었다. 그 특유의 분위기에서 학생이라고 짐작할 뿐, 교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다.

 

잠시만요. 그 봉투에서 꺼낼 게 좀 있어서.”

 

미리 예고의 말을 하며 천천히 봉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보통은 이 정도 제스처만으로도 비켜달라는 뜻을 이해하고 살짝 물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년은 꿈쩍도 않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조수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저는 그쪽에 물어볼 게 있는데요.”

?”

 

조수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잠정적인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귀찮은 일을 몰고 오는 법이었다. 조수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봉투 안에서 다시 전단지를 한 움큼 꺼내들려고 할 때, 소년이 갑자기 조수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 놈 왜 이래? 게이인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조수는 주먹을 단단히 말아 쥐었다. 보자마자 손목부터 잡는 걸 보니 속도감이 있는 놈이다. 여기서 더 진도를 빼려고 시도하는 기색만 있으면 곧장 자신의 주먹과 저놈의 얼굴로 운동 에너지 보존을 실험해볼 참이었다.

 

실험 직전, 소년이 입을 열었다.

 

현금 있으세요?”

뭐요? 갑자기 뭔 현금이야? 5천원밖에 없으니까 저리 가요.”

“5천원? 에이, 거지네……. 어쩔 수 없죠. 그거라도 주세요.”

 

갑자기 사람 손목을 붙잡고 한다는 얘기가 돈을 달라는 소리라니. 조수는 기가 찼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런 얼빠진 조수의 얼굴을 보며 소년은 싱긋 웃었다.

 

물론 그냥 달라는 건 아니에요. 빌려달라는 거지. 제가 지금 돈이 좀 급하거든요.”

이보세요, 학생. 돈은 나도 급해요. 다음 주 밥 먹을 돈이 없다고요.”

알아요. 그러니 이런 구질구질한 일이나 하고 있는 거겠죠.”

 

소년은 손목을 잡았던 손을 풀고 전단지가 들어있는 봉투에 손을 뻗었다. 거기서 매끈한 학원 전단지 하나를 빼들고서는 그걸 조수에게 내밀었다.

 

대신 담보로 이거라도 맡기면 어때요? 그거 가지고 계시면 제가 다음에 와서 돈 갚을게요.”

……?”

담보라고요, 담보.”

 

담보라. 조수는 주먹을 쥐었던 손을 풀고 고심했다. 사실 담보를 받고 돈을 빌려줄 정도로 돈이 여유가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저렇게 애원하는데 한 번쯤 빌려주지 못할 까닭도 없어 보였다.

 

학생이 돈이 어디 있겠는가. 분명 먹고 싶은 것도 있는데 먹지도 못하고, 불쌍하게 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조수 자신부터가 그렇게 살아와서 절절히 공감이 갔다.

 

에이, 뭐 그래. 가끔 기부하는 셈 치죠, .”

 

조수는 쿨하게 지갑을 탈탈 털어 안에 있는 5천원을 꺼내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소년은 활짝 웃으며 그 돈을 받아들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고마워요, 바보 형.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그래, 잘 들어가고.”

뼈 빠지게 일하세요. 내일 또 올게요.”

 

일까지 걱정해 주다니, 요새 보기 드문 성실한 학생이었다. 곧장 인파 속에 휩쓸려 사라지는 학생의 뒷모습을 보고선, 조수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단지를 들었다. 빨리 오늘의 할당량을 마치고 사무소로 돌아가 짜장면이라도 먹었으면 싶었다.

 

흐음.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긴 하는데. 별일 있겠어?”

 

 

 

그날 오후, 조수는 분노에 가득 차서 사무소 문을 열어젖혔다.

 

으아아아아악!”

시발 깜짝이야. ! 노크 좀 하고 다녀!”

노크? 노크라고요? 소장님, 지금 노크가 중요합니까? 제 피 같은 돈이 날아갔는데? 짜장면 곱빼기를 몰래 먹을 수 있는 돈이 날아갔는데, 이깟 문짝이 중요한 거냐고요!”

어디서 뭘 하고 왔기에 생난리야. 앉아. 들어나 보게.”

 

소장은 책상 위에 있는 모니터 전원을 끄고 책상 앞에 있는 소파에 앉으라고 턱짓을 했다. 한참동안 소파를 노려보던 조수는 성큼성큼 소장이 있던 책상으로 걸어가 다시 모니터 전원을 켰다. 요새 유행하는 온라인 게임의 화면이 싸구려 15인치 모니터 위로 가득 떠올랐다.

 

묘하게 침착하다 했더니……찔리는 게 있으셨군요? 소장님, 저는 일 시키러 내보내놓고 지금 게임이 손에 잡히십니까?”

아니, 그게……잠시 기분 전환으로 살짝 한 거야. 얼마 안 했어.”

얼마나 하셨는데요?”

, . 30분 정도?”

 

30분일 리가 없지. 조수는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 화면을 자세히 살폈다. 장비도 더 좋아지고, 퀘스트 목록에 같이 깨기로 한 메인 퀘스트가 없었다. 경험치 바의 위치도 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보며 증거를 수집하고 있을 때, 게임 화면에 안내 문구가 떠올랐다.

 

-플레이 시간이 5시간을 경과했습니다. 잠시 쉬었다 하시기 바랍니다.

 

“30분이 다섯 시간이냐!”

아오 저 문구……. 저런 문구 넣을 생각한 공무원 놈들을 다 모가지를 잘라야 되는데. 나라 꼴이 어찌 되려고, 쯧쯧.”

나라를 걱정하시는 소장님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지금은 소장님의 얼굴을 먼저 걱정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 얼굴은 왜?”

이제 곧 마취 없이 성형 수술을 시작할 테니까. 무료 양악수술 펀치!”

 

하지만 소장은 피식 웃으며 조수의 팔을 붙잡고 가볍게 스텝을 옮겨 뒤로 돌아가 조수의 팔을 비틀었다. 초능력자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탐정 사무소를 개업하고 나서 하도 구르다보니 싸움에는 이골이 난 상태인 것이다. 조수는 급히 팔을 붙잡고 몸을 굴렀다.

 

아이고! 내 팔! 내 팔 부러졌네! 소장님, 경찰 불러요, 경찰! 법대로 하자고!”

엄살은……. 게임 좀 한 건 미안하다. 먼저 사과한다고. 그러니 일어나서 빡쳤던 썰이나 풀어봐. 너무 기어오르지 말고, 천둥벌거숭이새끼야.”

, 그럴까요.”

 

소장은 소파에 앉아 앞에 있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너덜너덜해진 선 부분에 감아둔 절연 테이프를 손으로 꾹 누르며 달달 외우다시피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희망탐정사무솝니다. 짜장면 두 개. 빨리요.”

탕수육은요?”

바랄 걸 바래라. 내가 사과의 의미로 사는 거니까, 말이나 해봐. 뭐 때문에 그래?”

 

소장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조수는 반대편 소파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소장에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콧구멍을 후비며 조수의 말을 듣던 소장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고삐리한테 삥을 뜯겼다고?”

거 참 단어 선택 좀 제대로 합시다. 삥을 뜯긴 게 아니죠. 제가 어디까지나 선의에 의해서 베푼 거지.”

그럼 아무 문제없잖아? 왜 성질이야?”

진짜 이 인간 의사소통능력이 바닥일세. 그런 말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분명 돈 줄 마음 같은 거 없었단 말입니다. 근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돈도 주고 혼자서 실실 쪼개고 있었을 때의 황당함을 아시겠냐고요.”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가보니 짜장면이었다. 소장이 던져준 돈으로 계산을 치른 후, 짜장면 두 개랑 단무지를 소파 앞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소장도 몸을 일으켜 나무젓가락 포장을 뜯었다.

 

그때 무슨 느낌 없디?”

느낌요?”

어지럽다거나, 토할 것 같다거나. 그런 느낌.”

좀 어지러웠던 것 같기도 한데요.”

그리고 걔가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말했어?”

요망한 놈이죠. 누굴 자기 지갑으로 아나.”

 

소장은 낄낄대며 짜장면을 비볐다. 몹시 신나 보이는 소장의 모습에 조수는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소장을 쳐다보았다. 미친 건 분명했는데, 평소보다 더 미쳤는지 분간하는 건 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미치셨어요?”

미치긴 누가 미쳐? 어이구, 그런 부분은 내가 좀 진작 가르쳐 놨어야 됐는데.”

그런 부분?”

물리적이지 않은 능력, 정신계나 그런 류의 초능력에 당할 때 사람은 거기에 저항을 하게 되지. 그러면서 두통이나 구토기를 느끼게 되거든. 염동력 같은 거에 당할 때 몸이 찌릿찌릿한 거랑 비슷한 맥락이야. 돈 줄 마음도 없었는데 돈을 주고, 어지러움을 느꼈다고?”

?”

 

소장은 면발을 후루룩 빨아들이면서, 짜장이 묻은 젓가락으로 조수를 가리켰다.

 

그 새끼, 마인드 컨-트롤 능력자다. 네가 찾은 거야.”

확신할 수 있어요?”

사실 가능성은 두 개야. 니가 구제할 도리가 없는 호구거나, 그 놈이 악마거나.”

. 전자는 불가능한 일이니 악마가 확실하군요.”

다시 오겠다고 말까지 한 걸 보면 거진 확실하다고 본다. 의외로 금방 잡을 수도 있겠군. 얼굴 기억나?”

잘 안나요. 근데 대로변이라 사람도 많았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데 추적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일단 그 근처 피시방이나 찜질방 근처로 찾아보고, 안되면 다른 방법을 쓰자고.”

다른 방법요?”

 

조수의 질문에 소장은 다 먹은 짜장면 그릇을 책상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오겠다고 했으니 똑같이 기다려 봐야지.”

 

 

 

 

다음 날, 소장은 어디 처박혀 있던 건지 정체도 알 수 없는 장비들을 산더미처럼 꺼내왔다. 속옷 바람으로 소장이 매달라고 지시한 초능력을 방어하는 호신구들을 주렁주렁 걸치고 나니 온 몸이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허름한 희망탐정사무소에 어울리지 않게 하이테크적 느낌이 나는 무전기와 골전도 마이크까지 귀에 걸었다. 밖에서 보면 이어폰을 끼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소장의 계획은 간단했다. 그 놈이 다시 조수를 찾아올 때까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장착한 무전기와 마이크로 서로 연락을 하며, 그때 만났던 거리에서 잠복을 하고 있겠다고 했다. 조수는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런 식으로 잡을 수 있어요?”

모르는 소리 하네. 다 잡혀. 이게 다 노-하우라는 거라고.”

노하우는 무슨 노태우 비자금 불태우는 소리하고 있네. 이런 사무소에 의뢰를 하다니 세계초능력자탐색조력협회는 진성 또라이들라니까.”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며 장비를 점검하는 조수 앞에서 소장이 코웃음을 쳤다.

 

얌마. 사람 우습게보지 마. 걔네가 부리는 사무소가 한둘일 거 같아? 대한민국 전역에 쫙 깔렸어요. 악마가 뭔 짓을 해도, 그 근처에 있는 사무소 하나 정도는 얻어 걸리게 돼 있어. 그게 이번에 우리인 거고. 우리 쪽도 말이야, 죽을 힘 다할 필요는 없어. 못 잡으면 그냥 정보만 올려 보낸 다음 보수를 받으면 되고, 잡으면 그냥 대박인거고. 한동안 탕수육 먹을 수 있다고.”

정말요?”

잡으면 3천이다. 너한테도 인-센티브 줄게.”

깐풍기도 사줘요.”

 

그 정도 금액이라면야. 조수는 모든 일에 납득하고 열심히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틈틈이 인파 속을 살피며, 그때와 비슷한 실루엣이 걸리길 기다렸다. 짧은 머리카락, 백팩. 그 외의 이미지는 희미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감을 믿을 수밖에.

 

소장이 알려준 대응 수칙을 속으로 되새겼다. 어차피 호신구들 주렁주렁 차 봐야, 마인드 컨트롤 같은 강력한 능력을 버텨낼 수 없다. 그저 시간만 약간 벌어줄 뿐이다. 그러니 그 놈이 눈에 띄기만 하면 일단 주먹부터 날리라고 했다.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면 능력도 쓰지 못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에 불을 켜고 알바를 하고 있던 조수의 눈에 무언가 익숙한 인영이 잡혔다. 반삭발 머리. 놈이었다.

 

왔어요.”

[며칠 있어야 될 줄 알았더니, 진짜로 하루만에? 너 정말 만만해 보였나 보다.]

시꺼. 깐풍기 시킬 준비나 해.”

[오냐. 명심해라. 처음에 봤을 때,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해. 그리고 가까이서 입 열려고 할 때 그냥 후려치라고.]

 

그 정도야 자신 있었다.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자연스레 그 쪽의 기색을 살폈다. 숨을 쉴 때마다 조금씩 놈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곧이다.

 

마지막 한 걸음과 함께 녀석이 조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제처럼 개운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조수의 손목을 붙잡았다. 조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년을 쳐다보았고, 소년은 그 기색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더욱 진한 미소를 매달았다.

 

안녕하…….”

무료 양악수술 펀치!”

 

조수는 인정사정 보지 않고 놈의 얼굴을 후려쳤다. 묵직한 타격감이 주먹에 느껴졌다. 완벽한 클린 히트. 이어폰 너머로 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했어! 사람들 끼어들기 전에 악마라고 말해!]

이 새끼, 악마다!”

 

조수의 외침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소년과 조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조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신음하면서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소년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그 때였다.

 

[멍청한 새끼야! 주위 안 살펴? 피해!]

?”

 

소장의 다음 말을 들을 새도 없이, 건장한 남자 몇 명이 조수를 덮쳤다. 속도를 실은 압도적인 무게 앞에서 조수는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한 채 튕겨나갔다. 단단한 보도블럭 위를 구르며 조수는 필사적으로 눈을 떠서 소년이 있는 쪽을 확인했다.

 

몇 명인가 되는 사람이 소년을 부축해 달아나고 있었다. 그 능력으로 사람을 조종해서 호위로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생각 외로 용의주도한 놈이잖아? 멀어지려 하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여기서 놓치면…….

 

그 순간, 서울 시내에 어울린다고는 말하지 못할 폭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잠시 동안 어리둥절해 하다가, 도로 저편의 건물 위에서 큼지막한 총을 들고 서 있는 소장을 발견하곤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조수는 기가 막혀서 고통도 잊고 소장에게 말을 걸었다.

 

맙소사……소장님 지금 총 쏜 거예요? 서울 한복판에서?”

[실탄 아니라 공포탄이야. 정신 조종을 안 당하려면 냉정을 찾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그리고 말이야, 니놈이 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으면 아예 쏠 이유도 없었거든?]

. 그거 좀 죄송한데요. 만약 사격 면허 정지되면 제가 컵라면 쏠게요.”

 

조수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패닉에 빠져 허둥대는 인파들 틈으로,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골목을 향해 달려 들어가는 그 악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잠시 동안 서서 멍하니 있자니, 이어폰에서 냉정한 목소리가 조수의 정신을 깨웠다.

 

[닥치고 그 놈 쫓아. 총까지 쐈으면 끝이야. 타협은 없어. 반드시 잡는다.]

 

 

 

 

소년은 겁에 질려 달아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각성한 이후로 이토록 심한 공포를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주먹도 아팠고, 자신이 악마라는 사실도 알아낸 그 호구같이 생긴 형도 무서웠다. 하지만 가장 무서웠던 건, 싸늘한 눈초리로 자신을 향해 라이플을 겨누고 있던 그 남자였다.

 

미친! 대한민국에서 총이라니, 이게 말이나 돼?

 

자신이 총을 맞을 정도로 잘못했단 말인가? 소년은 능력을 과다하게 쓴 적이 없었다. 가끔가다 돈만 좀 갈취하고, 집을 빌리기도 하고 했을 뿐. 누군가를 죽인 적도 없고 그러려고 했던 적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방은 이미 총을 들고 있었다. 게다가 쐈다. 소년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유효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저 총이 자신의 유효 거리보다 길까, 짧을까? 이미 현실적인 죽음의 공포가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가늠할 정보도, 용기도 없다.

 

소년은 이를 악문 채 덜덜 떨리는 다리로 계속 달렸다. 대한민국은 도무지 악마가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등록을 하면 전과자처럼 취급하는 주제에, 등록을 하지 않으면 범죄자다.

 

거기에 세계초능력자탐색조력협회라는 묘한 단체는 미등록 악마를 색출해내서 잡아들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초능력자인권보호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악마들을 구류시킨 채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무슨 새우잡이배스러운 느낌이 났다. 거기에 잡히는 것만은 절대 사양이다.

 

여기에 악마 있습니다, 소장님!”

 

호구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소년은 울상이 되어 다시 골목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살기 위해서는 도망쳐야만 했다.

 

제기랄, 편하게 먹고 사는 놈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날 위협하다니, 이건 불공평해!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두 남자에 대한 증오로 공포를 덮으면서, 소년은 계속 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도망 다녀도 어떻게 그리 귀신같이 찾아내는지. 거리 좀 벌렸다 싶을 땐 득달같이 호구의 외침이 골목에 울렸다. 징그러운 자식. 죽이고 싶다.

 

이대로 달아날 자신이 없었다.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걸 얻은 채로 여기서 살아나갈 수는 없다.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돌파구를 만들 수 없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을 포기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그러는 것처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숨 두 번 몰아쉴 시간에 소년은 선택을 끝냈다. 독기가 가득 찬 눈으로 주위를 살피던 소년은 곧 피시방 간판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소년은 지체하지 않고 피시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하의 피시방으로 기어들어간 놈을 붙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후위에 소장이 총을 겨눈 채 위협을 하며, 조수는 몇 번 놈의 뼈를 교정시켜 준 후에 능력을 봉인하는 수갑을 채웠다. 세계초능력자탐색조력협회에서 지급한 특제품이었다. 뒤에 서 있던 소장이 휘적휘적 걸어와 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직 어리네.”

미친놈들. 난 아무 잘못 없어!”

그래? 듣기로는 내 조수한테 5천원을 갈취했다던데.”

그건 저 호구가 그냥 준거야. 저렇게 잘 걸리는 놈은 처음이었어.”

악마도 사람 보는 눈은 있군.”

 

소장은 낄낄대며 조수를 쳐다보았다. 조수는 잔뜩 약이 오른 채로 소년을 죽일 듯이 쏘아보았지만 이미 잡힌 이상 소년은 3천만짜리 소중한 고객이었다. 더 손을 대는 것도 곤란했다.

 

여튼 뭐. 세계초능력자탐색조력협회가 자네를 찾고 있거든. 한 번 만나보는 게 좋겠어.”

거기 가면 난 죽어! 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풀어줘! 미친놈들, 사람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죽어? 아니, 협회는 그런 곳이 아닌데. 자네 좀 잘못 알고 있군.”

그런 말로 속이려 해봤자 소용없다!”

그래, 여기서 내 말 믿으라는 것도 무리지. 한 번 가서 물어봐. 대답도 잘 듣고 나중에 나한테 알려주고.”

개새끼! 멀쩡히 테러를 저지르고 다니는 놈들도 있는데, 그런 놈들 잡을 용기는 없으니까 나한테 행패부리는 거야? 이거 당장 풀란 말이야!”

 

소장은 싱긋 웃으며 총부리를 소년의 이마에 들이대었다. 발악을 멈추고 입을 다문 소년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소장은 차갑게 말했다.

 

아따 애새끼 입만 열면 명령형이네 거하게 뒤질라고. 이런 데서 평소 습관 딱 드러나는 거 몰라? 딱 봐도 능력 남용하고 다녔구만 뭘. 법은 알아, ? 사람한테 능력 쓴 순간, 네 놈 인생도 끝난 거야.”

 

소장은 소년의 수갑을 붙잡은 채 남은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1번을 길게 눌러 저장된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희망탐정사무소에 의뢰를 맡긴 장본인인 협회의 대리인에게 거는 전화였다. 소장이 전화 너머로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던 소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대체 뭐냐고……. 내가 좋아서 능력을 타고난 것도 아닌데, 아직 능력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이런 꼴을 당해야 돼?”

무단횡단하다 걸린 놈들도 다들 자기가 운이 나빴다고 말하더라고. 하지만 현실은 어떻지? 다 그놈들 행실이 나빴던 거지. 현실을 인정하게, 작은 친구.”

 

소장은 전화를 끊고서는 소년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소년이 물기 어린 눈으로 소장을 노려보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성범죄자들 알지, 성범죄자? 형 치르고 나서도 신상 공개하고 전자발찌 채우잖아. 그게 형 치르고 나서 곧장 범죄를 저질러서 그리 하던가?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사람들은 인권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건 자기 인권이 보호될 것 같을 때만 그렇다고. 악마의 힘은 그 범주를 넘은 거야. 솔직히 말하면, 니가 악마인가 아닌가가 중요하지 범죄를 저질렀나 안 저질렀나는 다들 별 관심도 없잖아.”

입 닥쳐! 너희 둘! 얼굴 똑똑히 봤어! 희망탐정사무소라고? 나중에 반드시 복수할거야!”

그러시든가. 하기 전에 예약도 좀 하고.”

 

세계초능력자탐색조력협회의 사람은 금방 왔다. 소장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곧장 수갑이 채워진 소년을 짐짝처럼 들고 차에 실었다. 차에 실리기 직전까지 그 소년은 소장과 조수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지만, 소장과 조수는 태연하게 귀를 후비고 있을 뿐이었다.

 

떠나가는 차를 멍하니 바라보며, 조수가 물었다.

 

이걸로 3천입니까?”

절차야 좀 남았지. 일단 협회에서 확인도 해야 되고. 아까 남자들 조종해서 널 떼어낸 걸 보면 확실하니까, 돈 들어오길 기대해도 되겠다.”

오늘 저녁 뭐 먹을까요?”

 

기대에 가득 찬 조수의 눈초리에, 소장은 코웃음을 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종류별로 하나씩 다 시켜.”

 

 

 

 

?”

그 소년은 악마가 아닌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제가 그 능력에 얻어맞은 게 두 번이나 되는데요?”

 

조수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항변했지만, 협회에서 나온 대리인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희도 이런 종류의 능력을 지닌 악마를 만나는 건 처음이라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거든요. 정확히는, 능력을 완전히 소모한 겁니다.”

소모?”

 

소장도 처음 듣는다는 듯 대리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리인은 소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악마는 잡히기 직전, 피시방에서 어떤 게시글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게시글에는 그 악마의 모든 능력이 집약되어 있고, 이 게시글을 다 읽고 거기에 반응을 하게 되면 악마가 남겨둔 지배에 빠져들게 됩니다.”

어떻게 되길래요?”

좀비가 된다고 하더군요.”

 

소장과 조수는 말도 안 된다는 눈빛으로 대리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리인은 그 의심에 찬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전염된다고 합니다.”

끄응. 복수한다고 으름장을 놓던 게 영 거짓말은 아니었군그래. 주여, 꼭 그 새끼 황천으로 데리고 가소서.”

 

소장은 길게 탄식했다. 지가 잡혀 들어갈 거 같다고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어 살포하다니. 크게 될 놈인 줄 알았더니 이미 큰 놈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원본 게시글을 찾아 삭제해야 합니다. 다행히 저희 팀의 분석 결과 원본 게시글을 복사한 내용은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로지 그 게시글을 직접 보고 댓글을 단 사람들만이 바이러스에 감염됩니다. 그러니 하루 빨리 게시글을 찾아서 삭제해 주시고, 댓글을 단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도 추적해 주십시오.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입니다.”

 

조수의 물음에 상상외로 스케일이 큰 대답이 돌아왔다. 소장과 조수 둘 다 침묵을 지켰다. 어찌 반응해야 할지 영 난감했던 것이다. 대리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처음에는 피시방에서 곧장 추적하려고 했는데, 저희 쪽이 악마도 아니고 민간 사업체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영 쉽지가 않고요. 게다가 하루가 지난 상태라 이미 깨끗하게 정보가 날아간 상태더군요. 하드 보안관 개새끼……. 일단 급한 대로 IP 주소는 확보해 뒀습니다. 협회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의뢰하겠습니다.”

되는 대로 뒤지다가 후보를 찾으면 IP 주소를 대조해 보라는 거군요? 확인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자리에서 쓴 글이 많으면 어쩌죠?”

다행히 그 피시방은 장사 더럽게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어제 그 악마만이 사용했다는 건 확인했죠.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놈을 추적하던 희망탐정사무소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저희 쪽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제 먹은 양장피가 얹히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의뢰도 좋고, 다 좋은데 아까부터 이 대리인이 꺼내야 할 말을 묘하게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한 소장은 직구를 던져 보기로 했다.

 

그래서 거, 보수는? 3천 줘야지요.”

?”

왜 이러십니까, 아마추어같이. 계산할 건 칼같이 해야죠. 첫 의뢰는 이미 끝난 거 아닙니까. 일단 긁고 나서 다음 거 들어가야지.”

첫 의뢰가 뭐였죠?”

 

의뭉스레 되묻는 대리인의 말에 조수가 따지고 들었다.

 

아니, 왜 모르는 척 하세요? 마인드 컨트롤 능력을 지닌 악마를 잡아다 달라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잡았고요.”

그랬죠. 근데 다시 한 번 상황을 되새겨 보세요.”

뭘요?”

피시방에서 이미 능력을 버렸잖아요.”

?”

협회에 넘겨주실 땐 이미 마인드 컨트롤 능력자가 아니었는데요.”

뭔 말도 안 되는! 아니, 돈도 많으면서 설마 이런 걸로 트집 잡아서 보수 떼어먹으려는 거 아니겠죠? 아니죠? 아니라고 말해줘요. 제발요. 어제 저녁 카드로 긁었단 말입니다.”

 

어제 종류별로 한 개씩 시킨 카드 대금을 지불하고 나면 두 달은 굶어야 할 게 분명했다. 소장과 조수는 사색이 되어 대리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대리인은 아까 인류의 존망을 논하던 진중한 모습은 벗어던진 채, 깔깔거리며 그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

 

억울하면 법정에서 보도록 합시다. 하루 24시간, 상시 대기 중인 법무팀과 긴 대화를 나누시면 여러분도 납득하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바로……정의라는 이름에.”

마이클 센댈이 알카에다 특채 합격하는 소리 좀 하지 마시고 제발, 저희가 맞게 일한 건 맞지 않습니까. 일부라도 좀…….”

다행히 협회의 어르신들은 여러분에게 선처를 베풀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번 계약을 완수하지 못한 위약금과 총질 무마하는 대금은 그 게시글을 찾는 의뢰를 완수하는 걸로 퉁쳐주시겠다고.”

퉁 친다고요?”

. 쌤쌤. 오케이?”

 

난자완스가 팔보채를 타고 춤을 추는 환영을 보며, 소장과 조수는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걸로 전달할 내용은 다 전달했다고 생각한 에이전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리고 이거 편지함에 있던 거요. 들어올 때 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마지막으로 편지 봉투 하나만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대리인은 만족스럽게 사무소를 떠나갔다.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앉아 있던 소장이 문득 조수에게 말을 걸었다.

 

그 봉투는 뭐야? 뜯어봐.”

 

조수가 힘없이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펼쳤다. 내용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조수는 글썽글썽한 눈으로 안에 들어 있던 종이를 소장에게 내밀었다.

 

 

위반사실 통지 및 과태료부과 사전 통지서

 

귀하가 초능력자인권보호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었기에 통지합니다.

 

위반 장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위반 내용

확인되지 않은 타인을 악마라고 호칭

 

적용 법령

초능력자인권보호법 173

 

과태료금액(원금)

50,000

 

사전납부시경감금액

43,000

 

위 금액을 납부하시기 바랍니다.(영수합니다.)

 

 

 

소장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과태료 고지서를 책상 위에 뒤엎어 놓고, 울먹이는 조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했다. 연장자의 위엄을 보이며 위로하려 했는데, 막상 말을 꺼내자 한참 잠긴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는 운이 나빴어…….”

 

소장과 조수는 둘 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소장과 조수는 곧 기운을 차리고 생존과 다음 달의 식사를 위해 게시글 탐색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구글에 그 때 악마가 말했던 내용을 키워드화해서 검색하고, 그럴 듯한 내용이 걸리면 IP와 날짜를 확인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맨땅에 헤딩하는 작업이었다.

 

이런다고 진짜 찾을 수 있나?”

-글을 믿어라! 10년 전에 니놈이 본 야동도 찾아주시는 분이다.”

“10년 전의 전 야설만 보던 순수한 학생이어서.”

 

시답잖은 농담과 협회에 대한 험담을 주고받으며 작업을 진행하길 몇 시간째, 마침내 조수가 먼저 그 문제의 게시글을 찾아냈다. 복수, 지배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하고 있던 조수는 IP와 날짜, 시간이 들어맞는 것을 확인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소장님, 찾았어요! 찾았다고요!”

그래? 일단 들어가 봐.”

저 좀비 되기 싫은데요.”

다 읽고 댓글까지 달아야 된다잖아. 댓글은 몇 개야?”

한 개네요.”

있긴 있군……. 그래도 한 명 정도면 괜찮은 편이지. 열었어?”

지금 열게요.”

 

소장이 조수의 뒤에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하고, 조수는 긴장된 기색으로 게시글을 클릭했다. 잠시 웹 브라우저가 로딩을 하는가 싶더니, 삭제된 페이지라는 알림이 떠올랐다.

 

?”

이미 삭제됐네?”

 

조수와 소장은 김샜다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런 식으로 이미 일이 해결되어 있을 줄이야. 인류 멸망이 다시 판타지 소설 속으로 돌아간 안도감을 느끼며, 소장은 한층 가벼워진 기색으로 조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댓글이나 따로 찾아봐. 댓글 단 놈도 추적해야 되니까. 할 수 있어?”

어차피 구글에서 찾은 건데요, . 그쪽에 저장된 페이지를 열면 되죠.”

 

조수는 능숙하게 검색 결과 창으로 창을 되돌리더니, 옆에 파란 글씨로 되어 있는 저장된 페이지 열기를 마우스 포인터로 클릭했다. 그러자 악마가 남긴 최후의 유산이 모니터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놈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충분히 했다 개 같은 놈아! 우린 일주일쯤 후에 굶어 죽을지도 모르니까!”

 

페이지 제일 상단에 있는 문장을 읽고 조수가 분통을 터트렸다. 소장도 똑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협회의 의뢰를 빨리 완수해서 털어 버려야 했다.

 

긴 내용 뭐 볼 필요 있나. 이미 삭제됐는데. 댓글 확인하고 끝내자고.”

그럴까요? 하긴 봐도 기분만 드럽네.”

 

조수는 휠을 돌려 죽죽 스크롤을 내렸다. 글이 상당히 길었던지라, 본문이 끝나는 부분까지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조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댓글 창을 클릭해 열었다.

 

소장은 일단 IP 주소와 시간을 살폈다. 이 두 자료를 기반으로 위치를 추적해 나갈 거였다. 그런데 모니터를 조작하던 조수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고개를 책상에 푹 처박는 게 아닌가? 이마에서 둔탁한 소리가 날 정도였던지라 소장은 조심스럽게 조수의 몸을 살폈다. 멀쩡해 보였다. 소장은 다른 가능성을 점치며 조심스레 조수에게 질문했다.

 

, 혹시 좀비 됐냐?”

할렐루야! 인류는 구원받았습니다!”

 

조수는 갑자기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소장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이놈이 미쳤다는 증거를 찾아내려 했다. 미쳤다는 건 분명한데, 평소보다 더 미쳤다는 걸 증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 미쳤냐?”

미치긴 누가 미쳐요? 와서 댓글이나 보세요.”

뭐라고 써 있길래 그 난리를 피우는 거야?”

보시면 소장님도 제 반응을 이해하실 걸요.”

 

소장은 눈을 돌려 시간과 IP 위에 있는 댓글의 내용을 봤다.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ㅇㅇ라는 사람이 남긴 댓글이었다.

 

 

ㅇㅇ 좋은 글이군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170.08.**.*** 2012.09.05.

 

 

소장은 조수를 돌아보았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조수를 보며, 소장도 피식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다음 달 날아올 카드 고지서를 생각해도 관대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장은 어제에 이어 또 호기롭게 외쳤다.

 

보고서 가져와. 이번 의뢰는 끝났다!”

 

거 참, 세상사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볼펜 끝에 침을 묻히며 소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재앙이라도 일어나나 싶었지만 어디 사는지 모를 영웅이 침착하게 세상을 구해냈다. 본인은 자각조차 없겠지만 말이다.

 

처음 세상에 악마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그 무에 대수인가. 이번 일만 봐도 그렇다. 인류는 이미 그런 류의 종자를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 최선의 대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범용성이 극히 높은 슬기로운 지혜와 함께.

 

그 지혜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맹수와의 관계를 해소하는 시스템 위에 덧붙여진 간단한 인간관계의 규칙. 지금도 그 규칙은 동물원에 가 보면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새하얀 간판 위에 또박또박 인쇄된 글씨로.

 

  

 

 

 

Do not Feed the animals

병신에게 관심을 주지 마시오

 

 

 

 

 

디시인사이드 판타지 갤러리

화룡배 단편대회 출품작

http://fangal.org/index.php?document_srl=470740&mid=freenovel

 

대마
단편/그 외 2012. 9. 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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